[토요칼럼] 엄마 이영애와 이승만 대통령

입력 2023-10-13 17:50   수정 2023-10-14 00:49

김정일이 2011년 사망했을 때 심장 쇼크라는 갑작스러운 죽음의 원인보다 놀랐던 건 북한 주민의 반응이었다. 지도자의 죽음을 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오열하는 모습이 연극적으로 보일 정도로 과장돼 보였다. 슬픔을 경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정일 사망 1년이 안 된 즈음 미국 언론에서는 일부 북한 주민은 당과 군부에 잘 보이기 위한 위선이거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런 행동을 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배우 이영애 씨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위해 5000만원을 기부한 뒤 비판적인 언론에 보낸 입장문을 읽고 12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도 마음속 불편한 장면으로 남아 있던 게 바로 통곡하는 북한 아이들의 사진이다. 아이들은 평양의 차가운 김일성광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코가 빨개진 채 눈물을 흘렸다. 감정마저 통제되는 곳에서 아이들조차 참인지 거짓인지도 모를 눈물이었다.

이씨는 자신의 기부를 비판한 좌파 언론과 기자에게 “우리나라가 북한 정권의 야욕대로 그들이 원하는 개인 일가의 독재 공산국가가 되었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며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고 되물었다. 두 아이 엄마인 그의 질문에 사진을 다시 찾아봤다. 사진 속 북한 아이들의 얼굴에 우리 주변 아이들의 얼굴을 겹쳐 보다가 마음이 아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가진 것이 실제로 박탈당하거나 의지를 가지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새삼 깨닫게 된다. 자유가 그렇다. 더구나 자녀를 두고 보니 사고나 죽음과 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한 연상이 쉽게 이뤄진다. 그 상상력을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국가 발전과 역사에 대한 성찰로 연결한 엄마 이씨의 책임감에 깊이 공감한 이유다.

되짚어 보면 학창 시절 현대사에 대해 시간과 공을 들여 공부할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변명일 수 있지만 나와 같은 1980년대생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역사 수업은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됐고, 현대사는 학기 말 시험 범위에 간신히 포함됐던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도 얕은 지식과 잘못된 선입견으로 게으른 평가를 내렸던 걸 인정해야겠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대통령 외교를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큰 폭의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했다. 지나친 인상 요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북한과의 휴전 상황에서 그때까지 1조원이 안 되는 돈으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원받고 있다는 현실에 안도했다. 자연스럽게 한·미 동맹을 기어코 성사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인 재평가를 할 수 있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중국·러시아와 맞닿은 한반도 전체가 공산권에 편입되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다. 만약 그가 6·25전쟁 과정에서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정전 협상 서명을 거부하는 등 미국을 향해 벼랑 끝 전술을 펼치지 않았다면 우리 세대가 세계 최고의 안보 동맹이라는 과실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화가 역사의 최고선(善)이었고, 최고선이어야만 하는 때가 있었다.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희생 덕에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하지만 ‘선 아니면 악’이라는 빈곤한 역사관이 계속되는 탓에 우리 세대는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민주주의만큼이나 자유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박한 평가가 이어졌던 것은 이런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이영애 씨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족특위를 강제 해산하고 친일 부역자를 정부 요직에 기용한 점을 거론한다. 제주 4·3사건을 비롯해 거창 민간인학살, 국민방위군 사건, 여순사건에서 민간인 학살을 지시했다고 지적한다. 마땅히 기억해야 하고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잘못이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공(功)을 인정한다고 해서 과(過)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데도 선악의 이분법에 사로잡힌 그들은 이씨를 기어이 여론의 단두대에 세웠다.

이씨 말대로 그들의 의중이 명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과한 비난에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올바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양보하고 화합하자며 끝까지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를 낸 이씨의 태도에 숙연해질 뿐이다. 같은 엄마이자 동시대의 책임감을 가져야 할 어른으로서 ‘자유대한민국이 갈등과 반목을 넘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그의 간청에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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